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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p.63~76(민음사) ④

by 월가뷰 2022. 8. 29.

 

오늘의 독서


저녁시간에 어울리는 재즈 음악과 함께 

 

책을 열며

  • 오늘의 리드문
파넬은 아일랜드의 민족당 당수로서 정치적인 영향력과 더불어 대중들의 지지와 인기가 높았던 정치인이었지만, 1889년에 윌리엄 오셰이의 부인이었던 키티와 터진 불륜 사건으로 실각하게 된 인물이었다. 파넬이 실각하자 그가 이끌던 당은 와해되었고, 그 또한 곧바로 죽음을 맞게 되었다. 그러자 파넬의 지지자들은 그를 비극적 영웅으로 칭송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그를 몰락하게 한 책임을 물어 가톨릭교회를 비난했다. 

이들은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애쓴 파넬에게 등을 돌린 가톨릭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맹목적인 신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들은 파넬의 잘못은 극히 개인적인 것이므로, 그가 주도했던 독립에 대한 열의나 희망까지도 잘못된 것으로 비난하면서 독립의 의지를 꺾은 것이야말로 더 큰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조이스는 파넬의 경우를 아일랜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비된 의식의 결과라고 보았다.

 

 

대학시절에 20세기 영문학 수업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들을 강독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 당시에 처음 '에피파니(epiphany)'라는 개념을 배우고 작품 속에 나타난 에피파니를 찾는데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제임스 조이스를 이해할 때 '마비(paralysis)' 역시 중요한 개념이라고 했다. '마비'라는 단어는 아일랜드가 독립하고 발전하는데, 가톨릭 가치관이 이를 저해하고 있는 형국을 은유한 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바람이 부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정체되버린 모습이라고. 영국에 700년이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민족인 만큼 독립을 향한 염원이 강했지만, 한편으로는 구 시대의 관습과 종교적 교의로 인해서 스스로 발목을 붙들린 모습이다. 

 

이런 격변기의 더블린(아일랜드의 수도)에 태어나 자란 제임스 조이스는 이런 현실을 반영한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자신의 작품들이 '신성모독'으로 매도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조국을 떠나 평생 타국에 살았지만, 그의 작품은 늘 아일랜드를 담아내고 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p.63~76(민음사)

성모 마리아황금 궁전
아일린을 통해 상아탑, 황금궁전을 더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다니.. 

그가 한쪽 손을 집어넣고 있던 주머니 속으로 아일린이 자기 손을 넣었는데 그는 그녀의 손이 무척 차고 가늘고 부드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녀는 주머니란 아주 맹랑한 것이라고 말한 뒤에 갑자기 그의 손을 뿌리치고는 굽은 비탈길을 따라 웃으며 달아나 버렸다. 그 노란 머리카락은 햇빛을 받아 황금빛을 내며 등 뒤로 흘러내리고 있었지. <상아탑>이니 <황금궁전>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했어. 사물은 생각해 보면 결국 이해되는 법이야.
- p. 68

 

화자와 스티븐의 목소리가 달라지는 지점을 찾았다. '~다.'로 끝나는 문장은 화자이고, '~지, 어.' 등의 독백 구어체는 스티븐의 의식이다. 두 목소리가 섞여있는데 대충 이렇게 생각하며 읽으면 될 것 같다. 정확한 구분은 아무래도 스티븐을 '그'로 지칭되는 문장이 있어야 가능할듯하다.

 

68쪽에서 '에피파니'의 순간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을 찾았다. 아일린의 손을 잡고 그가 느낀 감정. 이전에 추정적이던 말들의 본질을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 '느낌'이 사실이라기에는 다분히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깨달음의 순간이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 꼬맹이는 마치 현자처럼, '사물을 생각하면 결국 이해된다는 말을 한다.' 맹랑하다.

 

 

아놀 신부가 화를 낸다는 것은 죄가 될까? 아니면 애들이 게으름을 피울 때 화를 내서라도 공부를 더 잘하게 할 수만 있다면 화를 내는 것쯤이야 허용될 수도 있는 걸까? 아니면 화를 내는 척 하지만 사실은 화를 내고 있지 않은 걸까?그는 화를 내도 괜찮기에 화를 내고 있을 것이다. 성직자니까 무엇이 죄가 되는지를 알고 있을 것이고, 또 죄가 되는 것은 하지 않을 테니까.
- p. 75

아놀 신부나 패디 배리트 같은 분들 그리고 맥글레이드 선생이나 글리슨 선생 같은 분들이 예수회의 구성원이 되지 않았더라면 어떤 사람들이 되었을 것인지 스티븐은 궁금했다.
-p. 76

 

스티븐의 머리속은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질문들로 가득차있다. 그것도 본질적인 질문들. '무엇이 죄인가?' 같은. 또, 성직자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선과 악으로 양분될 수 없는 복잡한 세상의 군상들을 이해해 보려고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스티븐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성직자들 역시 인간이고, 그들도 실수를하며 죄를 짓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어린시절 자의식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을 생각해보게 된다. 정체성과 가치관에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완충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 가정과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어린 스티븐이 고생이 많다.

 


책을 덮으며

문득 초등학교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나이가 있으신 호랑이 선생님이셨다. 항상 회초리를 들고다니면서, 구구단을 틀리면 손바닥을 때리셨다. 그 시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잘 나지않지만, 늘 긴장하며 학교에 갔었다. 무섭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한, 다소 냉혹한 선생님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독재시대의 장교같은 느낌으로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교육하셨던 것같다. 1학년 때 따뜻한 담임 선생님의 모습과는 무척 대비되었다. 당시는 체벌이 문제가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어른은, 선생님은 학생을 때려도 되는가.'하는 의문을 품었던 것 같다. 보호자들이 보호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세상. 처음으로 그런 불안과 두려움을 알았던 때가 아닐까 싶다. 좋은 어른이 되야지.

 

 

2022.08.26.

월가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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