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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p.76~91(민음사) ⑤

by 월가뷰 2022. 8. 31.

오늘의 독서


 

 

 

아일랜드 정서가 느껴지는 셀틱 플루트 연주곡입니다.

 

아일랜드는 오랜 영국의 식민 지배를 겪은 민족인 만큼, 한의 정서를 가진 민족이라는 점에서 우리 민족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한다. 아일랜드 전통 음악 또는 악기 연주를 들어보면 어딘가 정서가 닮은 듯해서 내적인 친밀감이 느껴진다. 언젠가 아일랜드 여행을 가 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때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속에 등장하는 더블린의 골목을 걸 어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은 아일랜드 감성이 느껴지는 셀틱 연주곡을 들으며 독서를 했다.

 

 


 

책을 열며

  • 오늘의 리드문
19세가 들어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주의나 다윈의 진화론 등은 그간의 종교적 신념에 회의감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더불어 기계에 의존하는 산업화와 그에 따른 도시화가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이 되면서 기독교적인 신앙심은 농도가 약해진다. 이러한 현상은 유럽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조이스가 살았던 아일랜드에서는 가톨릭의 교의가 여전히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었고 사회나 문화 전반에 걸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따라서 문학 분야에서도 아일랜드적인 것은 순결과 신성이라는 가톨릭교회의 선행이 담겨 있는 것이라야 했다. 그러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드러나듯이 가톨릭에 대한 시각은 아일랜드인들 사이에서도 많이 달랐다.

작품에서 단티 리오던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아일랜드의 정체성을 가톨릭교회의 그것과 일치시킨다. 그들은 가톨릭교의 성직자들이 정치나 도덕적인 문제에 있어 대중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사이먼 데덜러스나 케이시 씨와 같은 사람들은 아일랜드의 민족주의를 잘못 인도한 책임을 물어 가톨릭교회가 더 이상 정치적인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조이스 자신도 가톨리시즘에 반대하며 교회가 정치적인 문제에 간여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무엇보다 그는 성도덕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태도를 거부한다. 그는 아일랜드에서는 사회문화적인 부분은 물론 개인의 도덕적인 문제까지도 종교적으로 구속을 받기 때문에, 스스로의 자유로운 선택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선택의 기로에 선 그는 사제의 길을 포기하고 인간의 욕망을 거스르지 않는 예술가로서의 길을 선택한다.

가톨릭 성당의 경건한 느낌의 내부

 

20세기 초엽, 모더니즘 사조의 영향과 과학의 발전 등으로 탈 종교화가 가속화 되는 상황 속에서 아일랜드 내부에서도 변화를 겪는다. 식민 지배를 하던 영국이 성공회를 국교로 하고 있는데 반해, 아일랜드는 가톨릭 국가다. 가톨릭은 성공회(신교)에 비해서 형식과 규율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위기 속에서 민족을 하나로 결속 시키기 위한 하나의 구심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때론 융통성 없고 맹목적이 될 수 있는 위험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런 종교적 입장에 대한 갈등이 본문 곳곳에서 그려지고 있다. 주인공 스티븐은 그 갈등 속에서 무엇이 옳은 길인지 혼란스러워한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p.76~91(민음사)

그 순간 돌란 신부의 젊지 않은 회백색 얼굴이며, 양쪽 가장자리만 머리털이 엷게 나 있는 회백색 대머리며, 강철 테 안경이며, 안경을 통해 내다보고 있는 빛을 잃은 눈이 보였다. 속임수를 알고 있단 말을 무슨 근거로 할 수 있을까?
-p.78

불가능했다. 할 수 없었다. 그는 대머리 학감이 잔인하고도 빛을 잃은 그 눈으로 자기를 노려보던 것을 생각했다. 또 네 이름이 무어냐고 두 번씩이나 묻던 학감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쟁쟁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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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하려거든 자기 이름이나 조롱할 것이지. 돌란이라고? 남의 집 빨래나 해주고 사는 여인의 이름 같군.
-p.85

부드러운 잿빛 공기 속으로 환성이 사라졌다. 그는 외로웠다. 그는 행복하고 자유로웠다. 그렇지만 돌란 신ㄴ부에게 으스대지는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오히려 그에게 말 없이 복종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으스대지 않는 다는 것을 돌란 신부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의 앞에서 무언가 정다운 행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p.91

 

스티븐은 돌란신부의 불합리한 회초리질에 공포와 수치, 분노를 느낀다. "마비"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했고, '부당한, 잔인한'이라는 표현이 무려 12번이나 반복적으로 나온다. 같은 단어를 반복함으로써 그의 의식의 흐름은 억울함을 온 힘을 다해 표출하려고 한다. 언어의 경제성을 생각한다면 유치하고 불필요한 서술방법이지만, 우리 역시 하나에 꽂히면 한 단어가 머리속에 끊임없이 떠올라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스티븐은 심보가 단단히 상했고, 반항심에 교장에게 이 사실을 고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전에 한번도 이런 고자질을 한 적이 없던 그로써는 두려움과 분노를 오가며 불안정한 심리를 보여준다.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가도, 곧바로 자신이 당한 모욕을 곱씹으면서 교장실 문을 두드리는 등, 생각과 행동이 따로 노는듯이 보이는 모습을 보인다. 

 

마지막에는 돌란 신부의 이름을 '남의 집 빨래나 해주고 사는 여인의 이름' 이라고 욕하며 '성직자'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생각마저 하게된다. 어쩌면 그가 절대적인 이상, 또 이상으로 추앙했던 기독교 가치관에 균열이 생긴 분명한 사건이 아닐까 한다. 마치 최초의 인간 아담이 자신의 배우자인 이브를 하나님께 고자질한 것 같이 말이다. 거기에 더해서 그는 이런 거역하는 마음을 숨기려고까지 한다. 고해를 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기 보다 해방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 승리감은 곧 외로운 마음으로 바뀐다. 또 한번의 에피파니의 순간이 아닐까?

 


 

책을 덮으며

어떤 충동에 의해 저지른 일에 대해 이전에 가진 명분과 의미가 순간 빛을 잃었던 경험이 있는가? 스티븐은 우리의 유년기에 어떻게 자신의 내적 세계와 외부 세계를 하나로 통합해왔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잊고있었던 시절의 기억을 하나씩 떠올리게 만들어준다. 제임스 조이스는 자유간접화법이라는 서술방식으로 무의식에 잠들어 있던 기억을 끄집어 내는 느낌을 준다. 

 

절대적인 존재로 여겼던 '아버지, 선생님, 하나님'이란 존재의 절대성이 훼손되는 사건. 그리고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외롭게 세상을 방황하던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한의 정서가 서려있는 아일랜드 음악

 

 

2022.08.31.

월가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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