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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p.115 ~ 135(민음사) ⑦

by 월가뷰 2022. 9. 1.

오늘의 독서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 의 멜로디가 생각나는 아침. 구름이 잔뜩 껴서 하늘이 낮고 어둑하다. 영국의 흐린 날씨가 연상된다. 오늘 독서에서는 영국 하이틴 드라마에서 방황하는 청춘의 정서가 느껴졌다. 반항심이 가득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다 표출하지 못하고 유보하며 좌절감을 느끼는 모습이나, 언젠가 어른이 되면, 자신은 선생님이나 부모님과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라는 다짐 같은 것들은 어딘가 락음악과 연결된다. 젊다기엔 너무나 어린 예술가 스티븐에게 어울리는 음악이 아닐까!


오늘 젊은 예술가의 초상 속 장면들은 브릿팝과 90년대 락음악이 생각나네요..


책을 열며

  • 오늘의 리드문
순교자
"스티븐"의 이름은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인 성 스티븐을 또한, 함축한다. 예술가인 스티븐은 자신이 말한대로 "상상의 사제(교회의 사제 대신)"요, 대중의 박해로부터 소외와 오해를 받는 한 순교자인 셈이다. 그는 자신의 예술창조를 위해 순교자로서 자기희생의 능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스티븐 데덜러스"는 희랍 신화와 기독교의 요소들의 분명한 결합이요, 이는 소설의 전체 구조를 형성한다. 조이스는 그의 주인공을 위한 신화적 및 기독교적 유추를 암시함으로써, 상징주의 기법을 사용하여 작품의 구조를 달성하고 있다.


스티븐이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를 함축한다니. 그러고보니 '스데반 집사'가 떠오르네. 스데반-스티븐. 개정개역에서도 스데반이었던 것 같아. 영어 이름과 발음을 비교하면서 좀 피식거리게 됨. 마태-매튜, 누가-루크, 마가-마크, 요한-존, 베드로-피터, 여호수아-죠슈아 등등. 아무튼 순교자 스데반에서 따왔다면, 스티븐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내적 신념을 지키려다 희생당하는 운명에 처해있다고 볼 수 있을듯하다.

또 디덜러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차용되었다고 하니, 기독교+그리스 신화의 조합이니, 어딘가 이단적인 이름이다. 이런 상징성을 깔고서 작품을 썼다보니, 영미 문화권 독자가 아니면 이해하는데 품이 들어간다. 이럴 때, 우리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한국어 문학을 배우는 외국인들이 한국과 동양 세계관의 근간이 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고생 좀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한다. 우리가 영미권의 문화를 이해하고 배우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맛좀보여주고싶네.ㅋㅋㅋㅋ


젊은 예술가의 초상 p.115 ~ 135(민음사)

  • 감정의 억압과 배출
그 파티가 있던 날 밤에 겪었떤 것과 똑같은 초조하고 무거운 감정이 이날 저녁 다시 한번 그의 가슴을 가득 메웠지만 그 감정이 시를 통해 배출되지는 않았다. 소년 시절의 2년간 그가 이룬 성장과 지식이 그때와 현재 사이에 가로놓여 있어서 시를 통한 감정의 배출을 가로막고 있었다.
-p.121


스티븐이 아일린의 손을 잡은지 2년이 지났고, 그동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했다. 본격적 사춘기에 접어든 스티븐은 성신강림절 행사에 아일린이 온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뒤숭숭하다. 그녀의 손을 잡고 유치하지만 사랑의 시를 쓰던 소년은, 어딘가 더 강렬해진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몰라 당황스러워한다. 순수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기에는 더이상 어린 아이의 언어로 감당이 안된다고 할까!


  •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을 동경하다
학교 생활 이외의 여가를 그는 불온한 작가들을 읽는 데 보냈고, 이 작가들의 조롱과 난폭한 언사는 그의 머릿속에서 일종의 발효작용을 거친 후 마침내 머리에서 빠져나와 조잡한 글로 표현되곤 했다. (….) 그러던 어느 화요일, 그가 달리던 승리의 행로가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영어를 가르치던 테이트 선생이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무뚝뚝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녀석의 에세이에는 이단적인 생각이 들어있더군."
-p.123


스티븐은 바이런을 최고의 시인으로 칭송한다. 그러나 가톨릭의 영향이 강했던 아일랜드에서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은 방탕하고 불온한 사람으로, 이단적이라고 손가락질 받았다. 학교에서 모범생이자 글로써 인정받았던 스티븐이었지만, 그의 내면은 반항심과 자유롭고자 하는 갈망이 강함을 보여주는 대목인 듯하다.

조지 고든 바이런

시 작품과 특이한 개성으로 유럽인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시집 〈게으른 나날〉을 출판하며 시인의 길로 들어섰고, 〈차일드 해럴드의 여행〉으로 순식간에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대표작

100.daum.net



  • 누구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가
주위에서 자기더러 무엇보다 먼저 신사가 되고 무엇보다 먼저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되라고 촉구하는 아버지나 학교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들어왔다. 이런 목소리들이 이제는 그의 귀에 텅 빈 소리로 들리게 되었다. 체육관이 문을 열었을 때 그는 또다른 목소리가 그에게 튼튼하고 사내답고 건강한 사람이 되라고 촉구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민족부흥 운동이 학교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 때 또다른 목소리가 그에게 조국을 참되게 대할 것이며 조국의 언어와 전통을 부활하는 사업을 도와주도록 명령했다. 그가 예상한 대로 범속한 세계에서는 세속적인 목소리가 그에게 자기 힘으로 노력해서 아버지의 떨어진 지위를 높여주도록 명하고 있었따. 한편 학우들의 목소리는 그에게 훌륭한 학생이 되어 다른 애들이 비난당하지 않게 하고 다른 애들이 벌을 받지 않게 용서를 빌어 주고 또 최선을 다해 많은 휴강을 얻어내라고 촉구하고 있었다.

그가 환영을 추구할 때 우유부단하게 머뭇거리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속이 텅 빈 이 목소리들이 내는 소음이었다. 그는 이런 목소리들에 대해 잠시 동안만 귀를 기울였을 뿐이며, 이런 목소리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그것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않으며 혼자 있거나, 아니면 그 환영들이나 벗삼고 있을 때에만 행복감을 느꼈다.
- p.131


스티븐을 향한 주변의 기대들 속에서 그는 이 모든 목소리로부터 도망치는 방법이 '고독'뿐임을 일찍 깨달았다. 자기 스스로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구분하기에는 여전히 주체성이 강하지 못한 모습이다. 분명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그 소리에 귀기울여 살아가는 것이 행복임을 그는 알았다.


  •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의 망설임
가슴 속에서는 오만이니 희망이니 욕망이니 하는 것들이 마치 짓이겨놓은 약초처럼 맹렬한 향기를 그의 마음의 눈앞에 뿜어올리고 있었다. 상처투성이의 오만과 땅으로 떨어진 희망과 좌절해 버린 욕망의 냄새들이 별안간 솟구쳐서 소용돌이 치는 가운데 그는 언덕을 성큼성큼 내려갔다. 그 냄새들은 고뇌에 잠긴 그의 눈앞에서 진하고 맹렬한 연기처럼 솟아오르더니 머리 위로 사라졌고 결국 공기는 다시 맑아지고 싸늘해졌다.

그의 눈에는 아직도 얇은 막이 덮여 있었으나 이제는 눈이 더 화끈거리지는 않았다. 이전에 흔히 그에게서 분노와 불만을 떨쳐주곤 했던 힘과 유사한 어떤 힘이 그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가 가만히 서서 시신안치소의 음산한 현관을 응시하다가 돌로 포장한 그 옆 골목으로 눈길을 옮겼다. 그는 그 골목 벽에서 <롯츠>라는 글자를 보았고 그 퀘퀘하고 무거운 공기를 천천히 호흡하고 있었다.
'이건 말의 오줌과 짚이 썩는 냄새군' 그는 생각했다.
'숨쉬기에 기분 좋은 냄새군. 마음을 가라앉혀줄 거야. 이제는 마음이 아주 가라앉았어. 돌아가야지.'
-p.134


또 한번의 에피파니의 순간. 그는 연극무대에 오를 때, 새로운 사람이 된 듯한 감정을 느낀다. 전혀 다른 사람으로 다른 행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격정에 휩싸인다. 행사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그는 아일린을 찾아가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차서 언덕을 내리달렸다. 그러나 그는 어떤 힘에 이끌려 걸음을 멈췄다. 이 힘을 '분노와 불만을 떨쳐주곤 했던 힘'이라고 표현한다. 아마 마음에 차오르는 부정적 감정을 통제해야 했던 사회적 규율이나 규범이 아닐까. 발걸음을 멈춘 자리에서 시선이 멈춘 곳은 교묘하게도 '시신안치소'였다. 죽음, 마비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장소고, 그 거리 이름은 '롯츠(Lotts)'인데, 언어유희로 '썩다'라는 영단어 'Rot'과 발음이 유사하다.

롯과 그의 가족들
롯과 그의 가족이 소돔 에서 도망치고 있는 모습. 야코프 요르단스 그림. (출처: 위키백과)


또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 '롯'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마지막 의인이었고, 천사가 찾아와 가족을 데리고 그곳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 와중에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당부를 듣게 되는데, 롯의 아내는 이 명령을 거역해 소금기둥이 되었다. 이런 성서적 맥락을 통해 해석해보자면, 스티븐은 자신이 정신적으로 퇴몰해가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유일한 예술가이고, 그가 그곳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암시가 있는것이 아닐까. 스티븐은 제임스 조이스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인만큼, 제임스 조이스가 평생 로마와 파리, 스위스에서 살다가 타국에서 숨을 거뒀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책을 덮으며


손으로 필사할 때와 블로그를 쓸 때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다르다. 초고와 발행글은 분량적으로 질적으로 차이가 크다. 아무튼 오늘 읽은 내용에서 여러 상징성을 찾아내는 것이 흥미롭고 재미있게 다가왔다. 추리를 해가면서 읽는 느낌이랄까. 스티븐이 스스로를 이단아, 순교자와 동일시 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대에 아이돌이나 위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불안을 해소하듯이, 스티븐은 그가 아는 세계관인 성서에서 동일시하고 있는듯하다. 우리 스티븐 화이팅이다.

2022.9.1.
월가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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