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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p.135 ~ 158(민음사) ⑧

by 월가뷰 2022. 9. 2.

오늘의 독서


 

비오는 금요일이다.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하니 벌써 긴장이 된다. 힌남노는 2003년 매미보다 강하다고 하는데, 당시 아파트 한 동의 창문이 모조리 박살나 거리에 유리조각이 널려있었던 장면이 기억났다. 2년 전 태풍 하이난 때도, 해운대 구남로 식당 창문이 부서져 난리가 났었는데.. 끙.. 큰 피해가 예고된만큼 대비를 잘 해야겠다. 고층 아파트 거주하시는 분들.. 창문에 X자로 테이핑하시거나, 물먹인 신문지 붙이기 등을 실천해보시길. 장력을 높여준다나봐요.

 

이번주는 개강주간이라 정신없이 지내고 있다. 학생들로 활기를 되찾은 캠퍼스를 보니 덩달아 텐션이 올라간다. 방학기간 동안 상담 신청자가 적어서 적적하게 보냈는데, 이번학기는 대면수업이라 만나게 될 학생들이 많아질 듯하다. 센터 담당자도 바뀔 예정이라 변화가 예상된다. 바쁜 틈에도 독서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오늘 독서를 끝내고 'Seasons in the Sun'이 떠올랐다. 노숙한 소년 '스티븐'은 순간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매순간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쓸쓸하고, 회고적인 태도가 이 노래의 무드와 어울린다. 

 


 

책을 열며

터널을 걷는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스티븐 데덜러스의 예술가적 성장의 여정은 인간의 서사적 원형의 의미와 경험을 띠는데, 예를 들면, 괴테의 위대한 작품 <파우스트>의 주인공 파우스트의 지적 탐색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스티븐과 파우스트의 탐색은 본질적으로 내적이요, 양 작품들에서 그들은 인간 지식의 심연을 탐색해야 하는 운명 속에 있다. 스티븐은 그가 유럽으로 비상하기 전에, 자기 탐색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아일랜드와 그 사회의 미로(궁)를 인식해야 한다. 파우스트는 그가 자신의 "저주하는, 벽돌에 갇힌, 객실의 구멍"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기 전에, 그의 죽음의 상태인 미로를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두 탐색에서 양자는 자기 자신들을 초월하여 도달해야 하는 욕망을 지닌다. 파우스트는 초인간적이요 초자연적 지식을 가질 것을 욕망하는 가하면, 스티븐은 위대한 예술 작품을 위한 거의 초인적 창조자, 공장이 되기를 욕망한다. 

스티븐의 욕망은 아직까지는 간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연모하는 소녀를 찬미하는 시를 써낸다 던가, 바이런을 사숙하며 이단적인 생각이 담긴 에세이를 써낸다든가 하는 식이다. 내면의 소용돌이는 갈수록 커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그는 적극적으로 시를 쓰게 될 것 같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p.135 ~ 158(민음사)

그는 벨비디어 학교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던 애매한 위치를 생각해 보았다. 학비 전액 면제의 특대생이요, 학생간부이면서도 그 자신의 군위를 두려워했고, 오만하고 민감하고 의심이 많았으며, 자기 삶의 추잡함이나 마음 속의 반란을 대상으로 싸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p.142

 

 

 Tempora mutantur nos et mutamur in illis.
세월은 우리를 변하게 하고 우리는 세월 속에서 변한다.

 

그의 영혼 속에서는 차갑고 잔인하고 애정이 곁들이지 못한 욕정만이 격동하고 있었다. 그의 아동기는 죽었거나 상실되었고, 순박한 환희를 누릴 수 있는 영혼 또한 아동기와 함께 사라졌다. 그래서 그는 불모의 껍질로 남은 달처럼 되어 삶 속을 떠돌고 있었다.

그대의 얼굴이 창백함은
하늘을 오르며 땅을 굽어보며
외로이 떠도는 데 지쳤기 때문인가?

(셸리의 <달에게>(1824) 첫 시작 부분)
-p.149

 

그가 노린 목표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그는 자신의 바깥에 흐르는 삶이라는 추잡한 조류를 막아내리 위해 질서와 우아함으로 방파제를 세우려고 했으며, 행위와 규범과 능동적인 관심과 부모와 자식간의 새로운 관계를 방편삼아 그 추잡한 조류가 그의 내부에서 다시 강력하게 격동하는 것을 방지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쓸데 없는 일이었다. 그는 내부에서와 마찬가지로 바깥에서도 그 더러운 물은 그가 세운 방볍 너머로 흘렀고, 허물어진 방파제 위로 그 추잡한 조수는 다시 한번 거세게 밀려들었다.
-p153

 

오늘 독서 부분에서 스티븐은 외적 세계와 내적 세계의 불일치로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 내면에 피어오르는 욕망을 조절하지 못해 고뇌한다. 끊임없이 외부 세계와 내적 세계를 일치시키려는 노력과 실패, 또 갈망의 순환을 볼 수 있다. 수없이 실패는 거듭하면서 그는 어떤 감정도 온전히 느낄 수 없는 소진된 상태에 이른다. 청년이 되면서 가지게 되는 성적 충동, 성취감, 책임감이라는 새로운 역할과 욕망 속에서 스티븐은 해갈할 방법을 몰라 방황하고 헤멘다. 

 

기네스 캔맥주

 


 

책을 덮으며

무경험은 모든 경험이 일어나는 순간을 기다리면서도, 여유롭게 대처해내지 못했다는 당혹감과 수치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첫 경험의 강렬함은 평생 우리를 따라다닌다.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 같은 시대에는 온갖경로로 대리 경험을 할 수 있고, 학습할 수 있지만 불과 20-30년 전만해도 모든 유년은 대비없이 변화를 온 몸으로 겪어야 했다.

 

오늘날 지식의 풍요속에서도 지혜의 빈곤에 허덕이는 까닭은 배움의 고통없이 쉽게 얻어진 정보탓일까. 그럼에도 100년 전 이 시대를 살았던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섬세함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 영혼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이 자서전적 이야기가 고통을 덜어주기를 바라본다.

 

 

2022.09.02.

월가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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